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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은혜의 말씀

제목
2016년 2월 7일 주일 설교말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2/21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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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 한 사람의 회개
말씀 : 누가복음 5:1-11
설교 : 김원동 목사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상황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일본의 사업가 가운데 고이 마사다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성냥공장을 경영하다가 화재로 전 재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재기할 가망이 없자,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사업이 불에 타 없어진 것처럼 자기도 불에 타 죽겠다고 근처 화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화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책을 아주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무슨 책인가 하고 옆에서 봤더니 성경(聖經)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과 대화하던 중에 청년은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청년 역시 한때 폐병 3기로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건강도 회복되었다고 간증(干證)을 했습니다. 그때 그 간증을 듣고 있던 마사다로는 그 청년에게,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사실 나도 지금 자살하러 가던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했더니 “선생님도 성경을 읽으세요. 말씀 안에 구원이 있고, 새로운 인생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성경을 읽으세요.”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청년의 말대로 성경을 읽는 가운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나갔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없이 살 때는 실패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성공할 것을 믿습니다.’ 그는 다시 사업에 대한 용기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약공장을 세우고 ‘라이온’이라는 이름의 치약을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그 치약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치약공장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이런 간증을 하며 다녔다고 합니다. “인생에 실패가 있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라는 간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 1821∼1881)는 말하기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 중에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실패의 과정을 겪고, 그 다음 성공을 향해 다시 전진하는 것입니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 ; 1873∼1944) 박사는 말하기를 “낙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고 했습니다. 낙심에 대처할 줄 모르면서, 사업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성공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일찍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흥(興)할 때도 있고, 망(亡)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전문의들은 말하기를, 사람들이 암에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면, 암에 걸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인데, 이 본문 속에서, 하나의 원리를 깨닫게 합니다. 이 본문은, ‘제자를 부르셨다’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만을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 개인의 삶에 찾아가서, 어떻게 그 사람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게 되었는지 그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시몬 베드로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도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첫째, 예수님은 시몬의 삶의 현장에 찾아 오십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어부의 삶을 사는 시몬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종교는 막연한 신을 향해 찾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찾아오실 때,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신앙이란,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언약(말씀의 약속)이라는 매체를 통하여,-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늘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님을 새롭게 인식하고, 만나는 계기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는데,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에도 제가 이 예화를 말씀드렸는데요
어떤 건설회사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교회의 집사님이었는데, 그 분이 다니시던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예산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중직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는 중에 이 건설회사 사장님이 떠올라서 그를 찾아가 자초지종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돈이 부족합니다. 혹시 외상으로 좀 지어줄 수 있겠습니까?’그 말에 그 사장님이, ‘저희는 그렇게 한 전례(前例)가 없습니다만, 기도하시고 저를 찾아왔다고 하시니 그렇게 해 봅시다.’ 그러면서 외상으로 교회를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돈을 받지 못했느냐?하면, 아닙니다. 돈은 돈대로 받고, 교회도 건축하고, 나중에 그 교회의 장로님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서울시장이 되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누구신지 다 아시지요?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그물은, 예수님이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말씀에 의지하여 내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리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 수확을 얻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온전히 주님의 제자로 따라가기 전(前)에 있었던 일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는 가운데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베드로가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물고기를 잡아놓고 베드로가 하는 말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왜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는 겁니까? 지금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그 은혜 앞에 자기를 비추어 보니까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본문의 상황을 유추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밤새껏 물고기를 잡느라고 수고하다가 그물을 씻어서 지금 다 말리려고 걸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데로, 일을 끝내고 다 정돈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그물을 다시 내리라’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무슨 일을 한번 끝낸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 일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한평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또, 그물이란 깊은 데서 내릴 수 있는 성격이 못 됩니다. 지금까지는 밤에, 어두운 때에는, 얕은데서 그물을 내리거든요. 그런데 전혀 상식 밖의 말씀을 하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은 목수(木手)잖아요. 그러나 베드로는 어부로서, 호수에서 한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수가 어부에게 "깊은데 그물을 내리라." 그럽니다.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베드로는 이런 생각을 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못 잡는다. 못 잡을 건 뻔하다.'


그래도 오늘 성경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5절)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아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바다에 대해서는 제가 더 전문가입니다.지금 우리들이 밤새도록 수고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이제도 못 잡을 것이 뻔합니다만은 그래도 말씀하시니까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인격과 체면을 보아서 일단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렸는데, 놀랍게도 물고기를 가득 잡아서 그물이 찢어지게 됐습니다. 그때에 그는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왜요? 분명히 의심하고 했거든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할 때에 "예!“하고, 확신을 갖고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저 하라! 하시니 합니다. 안될 것 같은데도 합니다." 억지로, 부득이 순종을 한 것입니다.


자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실을 모르시겠습니까?주님은 베드로의 그런 마음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이 믿음 없는 사람아. 믿고 해 봐!"
그런 책망 섞인 말씀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런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많이 잡도록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사실은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베드로의 불신앙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수용해 주신 것, 예수님께서 이렇게 베드로의 허물을 덮어주신 것, 이런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함으로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는데 이게 너무 놀랍고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은총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감사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느끼며 회개하는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욥기 42장에 보면, 욥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욥의 고난 과정을 보면, 하루 아침에 재산을 다 잃습니다. 그리고 10 명의 자녀들을 다 잃습니다,  그리고는 가정을 또한 잃잖아요. 아내가 저주하며, 떠나갑니다. 몸의 건강을 잃고, 많은 친구들까지 잃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당하는 고난 중에 욥의 고난(苦難)을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어머니가 왜 나를 세상에 낳으셔서 이렇게 젖을 먹이셨나?’ 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그는 원망 아닌 원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운 시간이 지나간 다음 하나님이 다시 은혜를 주실 때, 배나 주셨어요, 그런데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이여! 전에는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더니 고난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내가 지난날에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이제 재(災)를 무릅쓰고, 회개하나이다.‘ 이게 욥기에 처음 나오는 말이에요. ‘회개하나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며 회개한 게 아닙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서 너무 감격해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간에 믿음이 없이 말했던 거, 원망한 거,  불평한 거, 제가 회개(悔改)합니다" 그렇게 회개한 것입니다. 이 회개가, 하나님의 사람의 차원 높은 회개입니다.


흔히들 이런 말이 있지요? ‘회개의 깊이와 은혜의 높이는 언제나 반비례한다’ 그러지요.
여러분,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회개가 참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인고. 하면 첫째,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환경에 돌리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하지 못합니다. 둘째는, 변명체질인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잘못되었으면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끝내야 합니다. 뒷이야기가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사과하면서 말이 많은 사람, 이거 구제 불능입니다. 변명이 체질화 되면 구제 받기 힘듭니다.  또 셋째로는, 운명론자도 회개를 할 줄 몰라요.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돌리거든요. 여러분, 교만한 사람은, 회개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러잖아요. 회개로 인해서 오는 후속 결과, 그 불이익에 대해서 걱정을 하기 때문에 그는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또 넷째, 만사에 원망과 불평으로 사는 사람, 이 사람 역시 회개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회개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적인 회개로서 죄(罪)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원인이요. 내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는 지적(知的)인 회개가 있어야 되고요, 또 하나는, 정적(靜的)인 회개가 있습니다. 이 회개로 인해서 오는 형벌과 심판과 저주를 미리 생각하면서, 미리 느끼면서 통분해 하는 것이에요. '이런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데...' 하고 가슴 아파하는 통분함이 있어야 되구요. 또 하나는, 의지(意志)적인 회개입니다. 잘못된 줄 알았으면 거기서 결단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이키는 것, 이것이 회개(悔改)입니다.


여러분
회개의 동기(動機)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통스러워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서, 그 가책 때문에 그 가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 심리학자인 마틴 샐리그마 라고 하는 분이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삶을 우울하게, 비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 첫째가 영구성, 즉 변화를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는 결국 이대로 머물 수밖에 없고, 이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나는 결국 변화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변화(變化)를 인정하지 않는 거죠. 또 하나는, 확신형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하는 일이 다 그 모양이지. 나는 구제 불능이다. 나는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아마 앞으로 제대로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을꺼야.' 스스로 자기를 절망적으로 평가해요.


그 다음에, 개인성입니다. '모든 것은 나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나 자신에 문제가 있다' 그런 자괴감에 빠져요.(즉 스스로 부끄러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로 평가 절하해 버리면, 여기에 회개는 없게 되는 겁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보상을 바라고, 대가를 요구하면서 회개하는 것이 있어요. '이렇게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다. 축복이 올 것'이라는 그런 보상 심리로 회개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든 회개는 그리 아름다운 회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은혜와 은총에 감사하면서 감격한 중에 회개하는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매를 맞으면서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잘못한 걸 다 알고도 어머니가 그를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어 줬을 때,  그의 가슴에 안기면서 "어머니,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는 그 회개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은혜 가운데서 회개하는 회개가, 진정한 자기 정체의식이요, 진정한 회개라는 뜻입니다.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에 대한 이런 얘기가 있지요. 리스트가 어느 날 독일의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마침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아가씨가 피아노 독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 광고를 써 붙이고 또 소문을 내었습니다. 신문에도 내었습니다. "아무개가 피아노 독주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녀는 리스트의 제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당시 유명한 리스트의 제자라고 하면 아주 명예가 높아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마침 독주회하기 바로 전날 리스트가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리스트의 얼굴을 직접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리스트가 온 겁니다. 이 여자가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리스트가 여기 왔으니 큰일 났구나!' 그래서 급하게 리스트가 묵는 숙소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빌었습니다. "저는 고아출신으로 혼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제 독주회를 가지려고 하는 시점에, 선생님의 고귀한 이름을 도용하고, 선생님의 제자라고 광고를 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듣던 리스트가 껄껄 웃으면서 "큰 실수를 했구먼요.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한답니다. 이리 오세요. 피아노에 앉아서 한 곡을 쳐 보세요." 그래서 잠깐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때 리스트는 말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이렇게 조금 달리 했으면 좋겠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하는 말이 "분명히 내가 당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떳떳하게 리스트의 제자라고 하세요. 그리고 연주회에 내가 참석하겠는데, '마지막 곡은 제 스승되시는 리스트선생께서 하시겠습니다'라고 하세요. 그러면 제가 한 곡 쳐드리겠습니다."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믿음없는 베드로에게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가 회개할 때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베드로는 배를 육지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아갔지만 베드로의 허물됨을 우리가 알잖아요. 후에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큰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양을 먹이라" 그것으로 끝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에 감격해서 예수를 위해 남은 인생을 삽니다. 전설에 의하면, 닭 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하리라'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닭소리만 나면 엎드려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예수를 위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그 은혜에 감격해서 일생을 회개하며, 남은 생애를 주님께 헌신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 회개 속에 능력이 있고, 위대한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활약했던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뿐더러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그는 복음을 듣고, 구원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리고는 그 날부터 그는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죄수들은 그런 그의 태도를 믿지 못하고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은 자신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씩 감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콜슨은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서 그는 소명(召命)의 기적을 체험하고, 출옥한 후에 감옥에서 결심한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Fellowship) 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전 세계의 모든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후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회개의 주제를 다루면서,‘진정한 회개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며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이 원하시는 목적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본래적인 이상(理想)적인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언약의 백성들은 사실 회개로 시작해서 온전한 회개로 끝을 맺는 삶을 삽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겠습니까?


로버트 클린턴이 쓴 “유종의 미”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 유종의 미를 거두는 리더에게는 다음과 같은 삶의 특징이 있다.”
① 끝까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②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고, 특히 삶의 경험을 통해 계속 배워간다.
③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그 증거로,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④ 진리를 삶에 적용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본다.
⑤ 하나, 혹은 더 많은 영적 유산을 남긴다.
⑥ 사명의식을 갖고, 그것의 일부나 전부가 성취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유종의 미를 잘 거둔 리더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삶의 모델이 됩니다. 회개로 시작된 우리의 삶이, 사도 베드로처럼, 온전히 드려져서  하나님 나라에 쓰임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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