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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은혜의 말씀

제목
2016년 1월 24일 설교말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1/26

제목 :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말씀 : 로마서 8:26-30
설교 : 김원동 목사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인가 할 때에,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바라보는 자입니다.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 찬 세상이라 하더라도,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중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도 주의 사랑이 여기에 있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있음을 믿고 사는 자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세상과 불신자가 보는 세상이 달라요! 즉 신자가 갖는 세계관과 불신자들이 보는 세계관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 실패가 있고, 질병이 있고, 전쟁이 있고, 삶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긍정적으로)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구속’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참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삽니다. 세계관이란, 주변 상황이나 사건들을 인식하는 인식의 틀인데, 이게 참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근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잖아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참된 선인지,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걸 모르는데, 왜 갈등을 겪지 않겠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해요.내 앞에 무슨 일이 전개 되려는지도 모르고, 내게 진정 무엇이 가장 필요로 하는지도 잘 몰라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우리가 마땅히 빌 바도 알지 못한다!”그랬습니다.

왜 빌 바를 모를까요?
① 앞으로 되어 질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저에게는 고교동창인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 어떤 회사에 다니다, 미국에 판촉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 당시 미국유학을 하고 있었던 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격추사건(KAL격추)이 있어 죽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였지만 인간은,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습니다.

② 왜 ‘빌 바를 또 모르느냐?’하면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최선(最善)인지 그걸 우리가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또③ 내게 어떻게 되어져야, 그게 ‘복’인지를 잘 모른다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잘 몰라요! 그런데 내게 넘치도록 지위나 명예, 재물이 주어지면, 그건 분명 복(福)이 아니예요. 우리는 출세하기 원하지만, 출세함으로 내 영혼이 망할지 모릅니다. 또, 우리는 늘 건강하기 원하지만, 우리가 건강함으로 더 많은 죄를 짓게 되고, 건강한 것 때문에, 가장 귀중한 믿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가장 필요로 하는지 소위 빌 바를 모를 경우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 자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왜요?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의 행동유형 특징이 있다 그럽니다.

① 생각 없이 행동하는 유형이 있다 그럽니다. 현대인들은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해요.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괴로우니까 자꾸 잊어버리려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을 거부하면, 행동만 남습니다. 그것도 본능과 육체적인 욕망에 끌린 행동을 하게 되면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② 행동 없이 생각만 하는 유형이 또 있습니다. 생각은 많아요, 아는 것도 많고, 그러나 행동의지가 없어요.

☞ 우리나라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많이 합니다. 특별히 미국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얻은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큰 회사나 연구실에서는 공부 많이 한 한국사람 채용하기를 꺼리는 성향이 있다고 그럽니다. 이유가 뭔고 하니
1) 창의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내는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2) 실천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알게 되면 아는 것만큼, 추진해야 되는데 ‘행함’이 없다는 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3) 팀-워크(teamwork)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다 훌륭한데, 협력해서 하는 일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도 문제지만, 행동 없는 생각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③세 번째 유형의 사람, 즉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지식이 행동의 동력으로 작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깨닫고, 내가 알면,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참 중요한 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게 자기 성찰입니다. 내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왜 내가 그렇게 행동하며 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성찰이 있을 때, 이게 더욱 가능해 진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자기 성찰’이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거냐? 하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나를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나의 나됨을 알아갈 수 있는 겁니까? 아니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자기의 존재됨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자기 성찰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하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자기를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로마서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여기 보시면, 성령의 사역이 ① 우리 연약함을 도우셔요! ②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것도 ③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셔요.


여러분!
왜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야 합니까? 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셔야만 할까요? 우리가 얼마나 세속화되어 있고, 물질주의화 되어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 탕자를 보세요!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의 분깃을 받아,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합니다.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나중에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습니다. 그러나 이 탕자는 자기 배고픔은 알지만, 아버지의 아픈 마음은 헤아릴 줄 모릅니다.즉 자기 삶의 실패는 알아도, 자기를 위해 눈물로 기다리는 아버지의 탄식소리는 들을 줄 몰라요! 이게 탕자입니다. 우리가 어려움(경제적)에 처할 때, 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통스러워는 하지만, 이런 일을 허락하신 아버지의 마음은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령과 우리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역사하셔요. 인격이시기에 때로는 권면하시고, 때로는 책망하시고, 때로는 위로하시고, 때로는 슬퍼 탄식하십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 성령께서 탄식하실까요?
① 우리가 보이는 것에, 세속적인 것에 자주 끌릴 때 탄식하셔요! 로마서 8:24절 중반에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그리스도인은 보이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진리, 선, 의, 자유, 은혜, 하나님의 나라, 이런 건 다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귀할 때가 있습니다. 또 ② 현재적인 게 아니라, 미래적인 게 더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물질이 아니라 영혼, 금세가 아니라 내세를 바라보고, 오늘을 사는 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누가 부자를 복되다 하고, 누가 가난한 자를 저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누가 건강만이 복이요, 병든 게 저주라고 말했습니까? 우리의 축복관이 너무 물질주의화 되어버렸고, 자본주의화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것을 버리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사랑할 때, 성령 하나님은 탄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또 ③언약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기 위해 인내해야 하는데, 그걸 인내하지 못하지, 그 말씀을 버릴 때, 성령하나님은 탄식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소원 자체가 그렇게 이기적일수가 없어요. 기도제목 자체가 ‘정욕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예요. 그러니까 성령께서 탄식할 수밖에요, 우린 이렇게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셔요, 그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셔요! Amen!


여러분!
우리가 왜 갈등을 겪을까요?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보는 이유는, 어차피 인간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① 어떤 사람은 환경지향적인 삶, 외적 조건에 의해 끌려가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환경에서 찾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외적 환경에 따라서 좋아졌다 나빠졌다 그러고, 또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인정에 따라 내 마음이 좌우되고 끌려가요. 이런 사람은 평생 갈등을 겪습니다. 또 ② 어떤 사람은 자기 지식과 경험지향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매사에 자기 지식, 자기 경험으로 살아요.
☞ 어떤 분이 어릴 때 늘 불화하는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가출을 해 버렸고, 이 아들은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평생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결혼을 하고도, 자기 아내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아내 역시도 언제나 자기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불신구조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과거 평생 그 잘못된 인식 속에 매여 삽니다. 자기지식, 잘못된 자기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불안과 분노의 죄책에서 결코 자유하지 못합니다. 이게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신앙지향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달라요. 신앙지향적인 사람은 매사에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으로 살거든요! 그리스도인은 이런 인식구조를 가지고 삽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원문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은,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① 모든 게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겁니다. 창조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구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② 모든 게 구원론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③ 어떤 결과든 그 결과는 모든 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인  되었을 때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매사를 사랑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의 하나님!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선(善)은 창조적입니다. 인간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아 헤매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물론 나는 선(善)하지 못하나 하나님은 선하셔서, 나로 선한 자로 만들어 가시고, 나는 그를 버리나, 하나님은 나를 기다리시고, 나는 그를 부인하나,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붙들고 계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은 믿을 수 없으나, 하나님은 믿을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로마서 8:29절을 같이 읽으십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에는 사실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겉에 현상적으로 보면 악한 것도, 부조리한 것도, 모순된 것도 많지만, 그것은 겉의 일이고, 깊은 곳에서는, 선(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또 둘째는, 모든 게 합해져서 끝에 가서는 반드시 선(善)이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걸 우리가 알 수 있을까요?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그랬잖아요? 무엇을 안다는 겁니까? 29-30절에 보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하심(작정하심)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 왜 우리의 삶에 실패가 있고, 억울한 일이 있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일이 필요할까요?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을까요? 왜 내게 이런 질병, 실패가 있어야 합니까? 왜 어려움이 있고, 갈등이 있고, 죽음이 있는 것입니까? 그 과정을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단하나, 이 모든 게 다 합쳐져서 내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자식이 자식노릇 잘 해야만,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게 아니지요. 먼저 사랑해 놓고, 사랑할 만한 자로, 키워가는 겁니다. 이걸 가리켜 ‘창조적 사랑’이라 그럽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어요!’ 그리고 그 선(善)이란, 결국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참 귀하게 보셔요! 그 한 사람의 영혼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얼마나 다양한 역사를 허락하시는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없어요! 어느 어촌의 조그마한 배들이 고기잡이를 떠났습니다. 이 어촌에는 고기 잡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어로장비가 발달되지 못한 때였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도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 그런데 이때 설상가상으로 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집을 보다가, 그만 촛불을 넘어뜨려 불이 나고야 맙니다. 동네 사람들은 합심해서 이 불을 끄느라고 남편, 또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생각을 다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동원해 정신없이 몇 시간 씨름했습니다. 자 그러는 중에 드디어 배가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풍랑을 이기며 돌아온 겁니다. 아침이 밝았고, 어제 밤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지 모릅니다. “불 끄는데 누가 가장 애를 썼고, 또 풍랑은 어떠했으며, 얼마나 서로가 힘이 들었는지 등.. 얘기를 주고받는데, 어느 어부가 말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웬 불인지는 몰랐으며, 어쨌든 불이 보여서, 그걸 바라보고 목표를 정해서 결국 집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에 불이 나지 않았다면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집 한 채를 무엇으로 바꾸겠습니까? 그러나 그 집이 불에 타는 역사가 있어야만, 어부들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음을 우리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겁니다. 왜 불이 나야 했는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지, 왜 병들어야 하는지, 왜 내 아들이 나보다 먼저 죽어야 하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지, 그걸 우리는 모를 때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잠깐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과거에도 나를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고 계셔요! 언젠가는 이 모든 일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날이 오겠지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그가 받는 고난의 의미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해석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죄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형벌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심판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허락된 고난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이 고난을 통해 나를 기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교훈)을 배우려고 들으려고 그래요.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문제(갈등)들이 뭡니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예요. 즉 우리의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갈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시겠어요?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답답한 일을 겪을 때마다, 생각해야 할 말씀이 바로 이겁니다. “외아들을 주셨는데 무얼 아까워하시겠어요?” 자 그렇다면 ‘내 필요욕구만 채워 달라!’고 하기 전(前)에 사랑의 하나님의 음성(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갈등은 우리의 내면에 ‘죄악성’을 볼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하도록 사건들을 통해 그것들을 보여주시는데 우리는 그 죄성을 바라보고, 낙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모든 것을 구속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자기 실망은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 로마서 8:33-34절을 다시 보십시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여러분! 우리 신앙의 삶에, ‘자책(自責)’은,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신 말씀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일입니다. 내안에 어떤 악함이 일어나든 그것은 의롭다함을 얻어야 할 기회인 것입니다. 자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가 겪는 환란(어려움)들입니다.

• 로마서 8:35-39절을 보십시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 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기 보세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란,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죽음’도 있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마다 우리가 체험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리요!”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37절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 라고 고백 했습니다. 참 대단한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이 모든 일을 이기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많이 체험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義)의 생명을 얻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루어 가심을 믿습니까? Amen!


우리의 삶의 어떤 갈등의 문제가 있더라도,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 약속의 말씀을 체험하고, 이 말씀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을 체험하는 것만큼 우린 이겨갈 수 있어요. 자 그럼 어떻게 그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의 법으로 살아갈 때 우린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간증 할 수 있는 자가 어떤 자 일까요? 두 가지 조건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선(善)을 체험합니다. Amen!

자 오늘 꼭 이것은 기억하십시다! 네 가지 핵심적인 사항합니다.
① 하나님은 선(善)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때에, 나를 부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선(善)’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Amen!(빌1:6)
② 모든 것이 선(善)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 즉 구체적인 현실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공과 실패가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건강과 질병이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명예와 굴욕이 있었습니까? 이 모든 게 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납득이 되든, 되지 못하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선(善)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③ 우리가 겪는 형편과 환경의 모든 것이 결국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Amen!

여러분! 우리의 기도에 문제점이 뭔지 아십니까? 매사가 다 잘되게 해 달라고만 합니다.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 무사태평하게 해 주십시오! 시험 붙게 해 주시고,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자녀를 위해 이렇게 기도 한다면, 그 자녀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요새 아이들 군에서 ‘자살’하는 젊은이가 많다! 그래요.왜요? 귀하게, 나약하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험한 세상 살아가야 한다면, 강하게 키우는 게 낫지 않겠어요?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를 되새겨 보세요! “하나님! 내게 이러한 아들을 주시옵소서! .아들에게 평탄한 길을 주지 마옵시고, 쉬운 길을 걷도록 하지 마옵소서! 때로는 역경과 환란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명철을 주옵소서!”

여러분! 평탄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역경과 순경, 폭풍과 고요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 그리고 ④ 영화(榮華)롭게 하십니다.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반드시 영화롭게 하셔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환란 속에서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의롭다’하시는 길로 인도하셔요. 그리고는 성화, 영화의 길로 가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 4가지 핵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① 하나님은 선(善)을 이루어 가십니다!
② 모든 것이 선(善)을 이룬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③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④ 그리고 결국은 영화롭게 하십니다!


자 로마서 8:28절을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men!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간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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