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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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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래에 새 도약을 준비하자[여호수아1:1-18]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4/04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토니 캠플로'박사가 9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만일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시겠습니까?' 라는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나온 대답은 "만일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면,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될 일을 더 많이 하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즉, '영원한 것에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영원한 것의 투자' 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우리가 사용한 시간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보다는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흔히들 투자의 3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안정성 입니다.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수익성 입니다. 투자에는 반드시 이익을 남기는 상품성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황금성 입니다. 즉, '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가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투자의 기본개념으로 여기에 한 가지가 덧붙여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영원성' 입니다.
즉, 일시적인 투자가 아닌, 영원한 투자입니다. 하늘나라의 투자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일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자신의 부가가치가 매겨집니다.

어떤 기자가 엄청난 부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가치가 얼마인지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그 거부는 웃으면서 "자신의 현재가치는 40만 달라" 라고 했습니다. 그 때 기자가 "당신은 수천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잖아요?" 라고 하니 그 부자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고, 얼마를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에게 쓰여졌느냐가 내게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에 40만 달러를 자원단체에 기부했을 뿐 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 앞에서 총정리 하면서 그 글의 제목을 '세상을 다녀가며 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다녀간다'라는 말에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런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이 세상을 다녀가는 동안,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 그것을 안다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다녀가신 목적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 땅을 다녀가는 이유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한다'는 것은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확립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을 타협하며 요령있게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가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문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참된 신앙은 오직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언젠가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바로 이 질문을 다시 받게 될 것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공직에서 물어난 후에 고향에 지은 도서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는 한 소년이 찾아와 트루먼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제 나이 때 어떤 사람이었나요? 트루먼은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너보다 훨씬 볼 품 없는 아이였단다.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면 겁을 먹고, 몸을 떨기도 했고, 운동도 아주 못했단다. 거기다가 시력도 아주 나빴단다."

그러자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러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때 트루먼은 친절하게 소년에게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나는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 등 뒤에서 나를 밀어 주고 계신다고 믿었지. 그리고 내게 용기를 준 말씀이 있었단다. 그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 는 성경구절이었는데, 나는 이 말씀을 의지하고, 일단 내게 주신 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심전력했었단다. 그 결과 하나님은 내게 대통령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단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도자의 요건>을 보통 사람들은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심어준 비전을 사람들이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전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우리가 품은 그 비전을 '비쥬얼라이즈(visualize)' 즉, 그 비전을 우리의 마음에 품고, 새기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시작한 그 일을 마음에 품고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잘 이루어 갈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며 가슴에 품는 것이 <비쥬얼라이즈>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은 '미래의 그림' 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가지고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삶의 열정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불타는 마음! 열정입니다. 그런데 이 열정은 비전을 갖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인생을 힘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 힘의 근원에는 몇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힘입니다. 돈은 필요하고 부가 힘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로, 지식의 힘 입니다. 아는 것이 힘 입니다. 모르면 무능력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경험의 힘 입니다. 경험한 일은 자신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힘 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한 차례 높은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적인 힘 입니다. 사람은 불의할 때 약합니다. 의롭지 못한 일을 할 때에는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 이유는 양심이 성원해 주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의로울 때, 정결할 때, 양심의 성원을 받을 때, 우리는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봉사와 희생적일 때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이기심은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이기심은 삶의 원동력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자신은 이웃에 봉사하고, 사회(나라)를 위하여 일한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으면, 힘이 솟아나고 용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것만을 <힘이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힘> 입니다. 정치적ㅇ니 여건이나 경제적인 능력이나 자기 결백이나 도덕적 용기 위에 <믿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 결백의 도덕적 용기란, 독선과 고집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힘은 '진실한 힘'이요, '겸손의 '으로, 힘의 근본이 됩니다. 바로 이 힘에 승리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가운데 믿음의 대표적인 사람, 승리의 사람, 여호수아를 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40년 동안 그의 백성을 인도했습니다만, 그는 가나안 땅을 멀리 바라보며 죽었습니다. 이제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암담했습니다. 상대방은 강하고, 포악합니다. 그런데다가 이 60만 대중들은 오합지졸입니다. 걸핏하면, 모세를 죽이겠다고 하던 사람들이었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불평했던 사람들입니다.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형편이 없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얘기가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고 불안했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라!"


여러분!
옛날 모세는 하나님께 이런 항의를 한 적이 있잖아요? "백성들이 나를 믿지 않으니,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낸 자라는 사실을 뭔가 증명할 걸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특별한 것을 주시지 않고, 늘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마른 막대기 였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실 때 뱀이 되고, 생수가 터지며,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그런 막대기도 없습니다. "그저 가라!" 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외형적으로 주신 것이 없습니다. 단지 "가라!"고 명령만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 믿음 뿐 입니다. 승리의 비결을 이것 밖에 없습니다. 힘의 원천은 오직 <믿음> 뿐 입니다.

여러분!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것이 뭘까요? '불신'입니다. 서로 불신하는 것입니다. 불신은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힘의 원친이 군사나, 경제나, 지식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 뿐 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한다면 '돈'이 있으면 뭐 하겠어요! 부부간에 믿음이 없으면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끝난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부는 백성을 믿어야 하고, 백성은 정부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믿지 못하고 불신하게 되면 서로 망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령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수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약속을 하십니다. "네가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은 다 네게 주었노라!" 여기 "주었노라!"는 과거 입니다. 구체적으로 주었다는 무슨 문서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 땅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는 약속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라!"그러시는데, 여호수아는 "나는 무능력합니다. 나는 이 백성을 데리고 건너 갈 수가 없ㅅ브니다." 그러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신의 허물(연약함)과 무능력을 바라보고 한탄하는게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무신론자 이발사가 목사님과 같이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발사가 말하기를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강도, 죄인, 부조리, 등 이런 모순을 왜 그냥 세상에 두시느냐고....." 하나님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마침 그 때 그 맞은 편에서 아주 보기 흉한 장발족의 청년이 오고 있었습니다. 듣고만 있던 목사님이 "당신, 이발사가 아니요! 저 보기 흉한 장발족들을 왜 그냥 보기만 하는거요, 저 청년들 이발 좀 해 주시지요!" 그랬습니다. 그랬던 이발사가 "목사님! 저들이 내게 와야 내가 깎아줄게 아닙니까!"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하나님도 같은 마음이실 겁니다! 당신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야지, 안 나오니 방법이 없지 않소!" 했습니다.

여러분! 언약의 하나님은 '약속'을 주셔도 그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행하는 길에만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순종인 것입니다. 믿음은 행동인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라 하시면 건너가야 합니다. 가라 하시면 갈 수 있음을 의미하고, 점령하라 하시면 점령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자, 여기에다 "율법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인들은 말하는 것, 참 조심해야 합니다. 망한다! 망한다! 하면 망합니다. 끝났다! 끝났다!하면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말을 함으로 생각이 좌우되고 생각함으로 운명이 좌우됨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에서 말이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말에서 생각이 바꾸어집니다. 그러니까 절망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에 <헬리 퍼세트>라는 한 장치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고 어렸을 때 사냥을 갔는데, 아버지가 엽총을 오발하는 바람에 그만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는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실수해서 장님이 되었으니, 얼마나 원망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늘 미안해 하고, 죄의식을 가지고 사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만 보면 얼마나 미안하겠어요. 엽총오발사건으로 눈이 멀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 하겠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말로서는 "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그렇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나는 괜찮아요!" 열심히 할 거에요. 열심히 공부 할 거에요! 나는 괜찮아요!" 그랬는데 실제로 그의 삶이 그렇게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후에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나중에 영국에서 체신부 장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이란 성취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언약 안에서 긍정적으로 하면, 그 말의 능력으로 실제 삶이 바꾸어 집니다. 왜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까? 언약의 말씀은 그 자체가 성취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난하고, 젊아하고, 한숨 쉬던 그 입으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게 승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 1장 5절~9절까지 우리가 읽으면서 명령과 약속을 구분해 보십시다.
5. 네 평성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지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나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찾아 보십시다. 명령은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입니다. 약속은 무엇입니까? "내가~~~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그리고 7절 명령은,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입니다. 약속은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그럽니다. 그리고는 8절에 명령의 말씀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데로 다 지켜 행하라." 입니다. 약속은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형통의 히브리말은 '타쉬빌'이라는 말인데, 이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강한 말입니다.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5절에도 약속의 말씀이 있지요?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입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르시고, 다음은 능력을 주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신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능력(권세)'를 주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믿고 가서, 귀신을 좇아내고, 병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사역을 해야 능력이 나타나잖아요? 그저 능력이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 그 증거를 볼 수 있겠습니까?

'시거니 해리스'의 수상록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산다. 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고, 패자는 시간에 좇겨서 달린다. 승자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하며 산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의 용기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적 용기, 도덕적 용기, 그리고 지성적 용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담대함, 이 용기는 다른데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 말씀을 묵상할 때에야 비로소 용기의 사람, 지혜의 사람, 능력의 사람, 형통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는 우리 자신의 의지가 아닙니다.
용기는 말씀이 주는 은사요, 용기란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할 때에 우리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력 입니다.


스위스의 '어니벨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키가 겨우 120cm밖에 되지 않는 난장이었습니다. 이미 그의 나이가 서른 살에 가까웠으나 그의 삶에는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도착과 함께 도다시 수많은 난관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는 호기심과 장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교회의 특별한 모임에 초청되었는데, 거기서는 사람들이 그를 조금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 쯤 뒤에 "하나님의 계획이 자기의 삶 속에도 있다"는 주제의 강연을 듣고 용기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같이 볼품없는 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심을 알고, 비로소 그의 삶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어 두었던 열등감이라는 사슬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의 삶은 창조적으로 변화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그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자 그는 아프리카의 어느 교육기관의 책임자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결코 실패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실패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앞서 자기의 마음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 역시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란 미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현재를 이겨가는 이거든요. 그린까 능력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는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아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세운 양로원에 연세가 많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여왕이 종종 방문하십니까?" 하고 묻자, "그렇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이 짖궂게 또 물었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심방한 일이 없습니까?" 하고 다시 묻는 말에, 그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무슨 말입니까? 난 심방을 받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분과 항상 함께 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심방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동니이란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자 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함께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지 성령의 증거하심을 확인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담대해 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현, 나타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 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약의 후사 입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뿐입니다. 우리가 처한 미래적 환경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대한 확실한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때때로 매 사건마다 믿음으로 순종해 간다면, 분명코 용기의 사람, 지혜의 사람, 말씀의 사람, 형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1장 10절~18절에서는 여호수아의 명령과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이 본문을 읽으시면서 어떤 점을 느끼세요? 오늘 본문 여호수아 1장은 우리에게 많은 승리의 원리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이 우리의 비전과 꿈과 목표로 정해졌다고 해도 그에 대한 적절한 준비가 없다면 그 꿈과 비전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준비하는 비전을 성취시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면 할 수록 위대한 결과는 기다려집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시면 몇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이 땅의 약속을 누가 주신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 비전을 누가 갖게 하신 겁니까?
2) 그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서는 누가 그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3)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양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 양식이란 무엇일까요?

'마루한이즘'에서 한창우 회장은 42세 때 파산을 경험한 후, '헝그리 정신, 도전 정신, 위기감과 긴장감'이라는 네 단어를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지키려고 네 단어를 통해 자신의 기초를 늘 다시 점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멋진 땅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기본적인 준비작업에 몰두해야 합니다. 기도가 기초라고 생각한다면 기도에 매달려야 합니다. 말씀이 그 기초라고 느끼면, 말씀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격이 가장 긴급한 기초라고 느낀다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준비가 없으면 전투는 백전백패 입니다. 그러나 그 기초 작업이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땅은 분명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기본기가 충실하게 다져 졌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11절에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강을 건너...' 즉 요단을 건너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앞에 가로 놓인 장애물이 있다면 건너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설가 이윤기 씨의 수필<어른의 학교>에 <산불로 크는 나무>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내용을 소개합니다.
네바다 산맥의 북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 세퀘이아 국립공원에는 세퀘이아 나무가 수천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높이가 자그마치 100미터, 지름이 12미터, 둘레가 37미터 정도 되는 엄청난 나무입니다. 어떤 나무는 수령이 3,200년 쯤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적설량이 많은 고산지대에서 사는 나무들에는 몇 가지 생존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키가 크고 가지가 적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퀘이아는 그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이상하게도 정기적으로 산불이 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세퀘이아의 덩치가 그렇게 커도, 솔방울은 좀 더 두꺼울 뿐 여느 솔방울과 다름없고 씨앗의 무게는 겨우 0.05그램 정도에 불과 합니다. 씨앗이 워낙 작고 가벼워서 그 공원의 대지에 가득 쌓인 낙엽층을 뚫고 땅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운이 좋아 발아한다고 해도 햇빛을 볼 수가 없어서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산불이 발생해야 그 불로 인해 세퀘이아 씨앗은 낙엽이 다 타버린 대지와 접촉하여 발아할 수 있고, 낙엽이 사라져도 햇빛도 볼 수 있고, 낙엽과 나무가 타서 생긴 재가 좋은 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산불에 힘입어 싹을 틔우기만 하면 1년에 약 30센티미터씩 자라기 시작하여 100년이 되면 30미터나 되는 거대한 나무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즉, 산불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정기적인 산불이 없으면 아예 싹 틔우기조차 어렵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꿈과 비전을 성취하는 일에도 동일한 원리가 작용됩니다. 산불이라는 장애물을 불평한다면 1년에 30센티미터씩 자라는 멋진 기회는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장애물은 건너라고 주신 것이고, 넘어서라고 허락한 것이지 결코 불평하면서 그 앞에서 좌절하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장애물인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바라보면서 불평하고 통곡할 일은 아닙니다. 그 요단강만 건너면, 그 산불만 견디면 우리의 꿈은 성취됩니다. 우리의 비전은 열매를 맺습니다. 장애물인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아도 비전이 성취된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꿈과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장애물은 우리를 더 높이 날게 하려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의 서곡인 것입니다.

비전을 성취하길 꿈꾸시나요? 그렇다면 몇 가지 원리적으로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이 본문을 읽고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하누리 공동체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지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그림을 비주얼라이즈 하세요.
그리고 언약의 후사답게 그에 따른 약속의 말씀 가지고 하나씩 실천해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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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3일 주일설교말씀

2016/04/04

제목 :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말씀 : 마태복음 5:8설교 : 김원동 목사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