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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은혜의 말씀

제목
2016년 2월 14일 주일 설교말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2/22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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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말씀 : 마5:1-3
설교 : 김원동 목사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 오늘 본문을 가리켜 ‘산상설교’라고 그럽니다. 그 이유는, ‘산 위에서 하신 설교’라 해서 ‘산상설교(수훈)’이라 그래요.
2. 이 산상설교를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제자들을 향해 하셨습니다.(1절에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3. 오늘 본문에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럽니까? 즉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는 어떤 자라구요? ‘심령이 가난한 자’


오래 전 신문에,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이 모씨는 1998년 중순까지만 해도 대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중산층이었습니다. 남편은 대기업의 과장이었고, 이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부부가 월 700만원 가량을 벌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49평형 아파트에 살았고, 승용차 두 대를 굴리며 그 나름대로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컴퓨터 대리점을 하겠다며 퇴사한 뒤인 99년 6월부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남편이 보증, 사기 등을 당하면서 5억여원의 빚을 떠안은 것입니다. 이씨도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학교를 그만 두어야만 했습니다. 아파트를 판돈과 퇴직금으로 빚을 갚았지만 3억원 가량이 남았습니다. 2003년 8월부터 카드 돌려막기가 불가능해졌고, 생활고가 거듭되어 결국 이혼까지 했습니다. 그해 12월 신용불량자가 되자 두 아이를 친구에게 맡기고 무작정 상경을 했습니다. 일용직 청소부 생활을 하며, 월 50~60만원을 벌어 20만원을 아이들에게 보냈습니다. 부부는 비교적 넉넉했었지만, 4년 반 만에 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가난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참으로 배고파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사람이 배가 고프면, 마음 또한 참 슬퍼진다 합니다. 그리고 배고픈 자의 생각은 참 단순해진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비유가 있잖아요? 그곳에 보면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즉 집으로 돌아온 동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13.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낭비해요...  14. 그런데 마침,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매우 궁핍해졌습니다.  15. 어쩔수 없이,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간신히 붙어 삽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합니다.  16. (배가 고파)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웁니다. 아무도 그를 돕는 자가 없습니다. 17. 이때 비로소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러니까 자신이 ‘배가 고파 굶어 죽는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립니다. 즉, 굶어죽는 지경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절박한 가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 2000년사를 연구해 보면 어디를 보던지, 가난과 질병 등, 어려움을 겪지 않고,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진 역사가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건, 민족이건, 나라건, 다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가난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단순하게 만듭니다. 가난한 자는 필요한 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필요의 뿌리는 돈입니다. 사람이 가난해지면 눌린 자의 의식을 갖게 됩니다. 신분도 낮아집니다. 가난한 지성인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소위 말발이 서지 않습니다. 가난해지면 스스로 천한 자로 느낍니다. 스스로 천대 받는다고 느낍니다. 이런 것이 소외감입니다. 그러니까 가난이라고 하는 것, 배고픔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필요조건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난은 사람을 아주 겸손하게 만듭니다. 지식도 포기하게 만듭니다. 자기 의도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의 지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의 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난이 이렇게 절박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소망은 오직 그 가난(그 배고픔)을 면하는데 있습니다. 그 가난(그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우립니다. 그러니까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절박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그럽니다. 예를 들어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가난한데,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말씀)를 영접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부하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가난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혼이(심령)이 갈하기에, 말씀을 사모합니다. 또 지식에 대하여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유식한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려고 합니다. 왜요? 지식에 대한 가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첫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난이란 외부적인 상황에서 채움 받지 못하면, 그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 영적 상태로는 스스로 해결될 수 없고, 외부에서 도움 받아야 하고, 외부에서 채움 받아야 할 상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I am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것을 아는 것입니다. 즉 자기 존재의 실상(실체)를 아는 것입니다. ‘나는 참 위선적인 존재구나! 나는 정말 죄인이구나! 나는 결코 의인이 아니구나!‘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I have nothing.‘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존재구나' 이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의롭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빛)앞에 서니까 나는 그 의를  갖지 못했구나! 이걸 알아요. '나는 그 일에 옳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하는데 내 속에 불의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내 심령이 참 가난하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는 'I can do nothing' 나는 그것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사랑하길 원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용서하라’ 하시지만, 용서가 안 됩니다. 여전히 그 사람만 생각하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참 할 수없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아니하시면 나는 무얼 하나 이룰 수도, 할 수도 없는 자구나! 이것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처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복입니까?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저희 것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누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시애틀에 어떤 젊은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도 많고, 참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그 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설교 테이프도 보내고 그를 위해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테이프는 친구가 보내니까 받아 놓기는 하지만 아예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의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극한 상황까지 갔습니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우울한 나날을 보내면서 마음이 비로소 가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친구가 보내 준 설교 테이프가 우연히 보였습니다. 울적한 마음에 위로라도 얻고 싶어 그 설교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날이 계속되도록, 계속 그 설교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의 마음(심령)에 평강을 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나라(천국), 즉 그의 지배와 통치를 누려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후에 그 교회의 장로님이 되어 참 신앙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가난할 때까지는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합니다. 마음이 가난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심령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영혼(심령)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권적인 통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심령(마음) 가난을, 언제 어떻게 대개 깨닫게 됩니까?

우리의 환경이 어려울 때, 우리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때로는 앞날이 불투명하고 우리의 삶속에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혹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큰 위기 속에 빠졌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지기 쉽다는 겁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 보면, 어떤 때 전도가 잘 됩니까?
그 사람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즉 그 심령이 가난해졌을 때입니다.
사람은, 의지하는 그 무엇이 많을 때, 즉 돈이 있다든지, 때로는 건강하다든지,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때나, 그 무엇을 가졌을 때는,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여기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의 원뜻은 ‘토 프뉴마티’, 즉 이것은 ‘영(혹은 마음)’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원문에는 ‘심령에 대하여 가난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자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갈급해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영혼이 갈급할 때 사람들은 뭔가 찾게 되어 있습니다.
“내 심령에 채워져야 할 게 뭔가? 뭐가 있어야, 무엇으로 채워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이런 사람들은 뭔가를 막 찾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채워집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제대로 배우려면 자기 의, 자기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영적 상태를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내가 참 가난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구나!’,
‘나는 누구를 사랑할 수도, 용납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지 못한 자구나!’

이것을 깨닫게 될 때에야 비로소 복 있는 자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어떤 얼굴이 멋있게 잘 생긴 청년이 있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에는 그 주변에 많은 여학생들이 쫓아 다녔습니다.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의 친구 중 한사람이 그에게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았더니, 뇌종양으로 밝혀졌습니다. 그것도 아주 큼직한 뇌종양으로 밝혀졌습니다. 뇌종양이 머릿속의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 사람에게는, 숨골 바로 옆에 있어서 제일 험한 종양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그 기간 동안에, 사람들이 계속 가서 전도를 했고, 또 다른 목사님도 가셔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하고 수술을 받았는데, 역시 어려운 수술이라, 뇌종양은 다 제거를 했는데, 한쪽 안면 신경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굴 반쪽에 감각이 부족해서, 보면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이 다르게 보입니다. 웃으면 한쪽 얼굴만 웃음이 있고, 한쪽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뒤에 참 놀라운 것은, 그가 이런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다, 나는 이것을 일생동안 가지고 갈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눈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백합니까?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내게는 공허함 밖에 없었고, 절망밖에 없었고, 외로움과 허탈감 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내 영혼이 참 비천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을 소생 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는 자를 가리켜, 복된 자라고 합니다.


여러분!
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불의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자기 백성(자녀)을, ‘심령이 가난한 자’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 이사야 57:15-18
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       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     키려 함이라. 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17.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18.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려면,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겸손한 자의 위치에 두셔야 합니다. 심령의 가난이란, 이런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15절) ‘내가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나니’ 그 이유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케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야만 됩니까? 심령이 가난해 지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질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존재인가? 내 힘으로 무엇을 과연 할 수 있는가?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는, 주님께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주님의 방법(새안약의 법)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광야의 놋뱀을 기억하십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하다가 불뱀을 만났습니다. 독사가 그들을 뭅니다. 무는 대로 독이 퍼집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셔서 “높은 장대에 놋으로 만든 뱀을 들라. 누구든지 이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리라.” 했습니다. 자기가 뱀의 독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고, 다른 어떤 도움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이 이 놋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고 다른 길은 없다고 느끼는 그 마음, 그래서 쳐다볼 수밖에 없는 마음, 이것이 과연 내 독을 풀 수 있는가 의심하기 전에 이 길 밖에 없어서 쳐다보는 그 사람에게만이 생명의 선물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오직 내가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만이 내 유일한 길이고, 내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심령이 가난해지기 전에는, 구원의 은혜도 없고 왜 내게 예수님이 필요한지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의 가난함이 없이는 천국을 경험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안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뭔가 할 수 있다고 느낄 때는, 그것에 의지합니다. 내 능력, 내 방법에 의지하고, 내가 가진 것에 의지하고, 그러나 그것들이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때 그때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에야 비로소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령이 가난한 그 자에게 천국의 복이 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미국 유니온 대학의 심리학자 어니스트 리곤(Earnest Ligon)교수는
그의 저서 중 ‘그리스도의 인격 심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팔복은 예수님의 행복이론이다. 만일 사람들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만 반응할 수 있다면 진정 그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심령이 가난해 질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지난날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교만이란 죄의 근본이요, 뿌리입니다.
교만이란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인 하나님의 법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습니다. 내가 내 삶에 선과 악의 입법자요, 판단자 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만나든 혹은 어떤 상황 속에 빠지게 되면, 모든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을 내게 두었습니다. 내 생각, 내 삶의 방법, 모든 가치 판단 기준을 내게 두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교만입니다.
 

여러분!
교만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 의에 도취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에 빠져있으면 자신의 영적상태를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복 있는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지배와 통치가 온전히 행사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The Kingdom of Heaven is at your hand”


‘천국은 너희 손이 닿는 바로 가까이에 왔다’ 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시간적이거나 거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여기 왔으니 나를 영접하기만 하면, 하늘 나라를 경험하고, 거부하면 임하지 못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그 곳이, 바로 하늘 나라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      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여기“너희 안에 있다”라는 말은? ‘너희 가운데 있다(among you)’라는 뜻입니다. ‘너희 안에 너희 가운데 있다.(among you)’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이란 예수님 자신이요, 말씀이 전파되는 곳이요,
말씀이 실현되는 곳으로써 곧 그리스도의 주권이 역사되는 곳,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신앙 고백되고, 실현되어 지는 곳입니다.


여러분
심령이,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너무 갈급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합니다.

“주 예수여! 주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말씀)와 연합한 자는, 천국을 영접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 결과가, 복(새언약에 따른 모든 약속)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인생의 곤고함을 겪고,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가는 길이 있다!’ 이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되게 하신 것입니다. 물질은 없어져도 그의 영혼은 복되게 하시고 건강과 지위는 잃어도,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무엇이 복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게 복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을 누리는 게 복이요, 하나님 나라의 인침을 받는 게 복이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누려가는 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5장 전체가 무얼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법,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로 살아가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누리는 복이 참된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마태복음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입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보십니까?
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도록 역사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복된 자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언약 백성입니다.
우리가 언약 백성으로 살기 위해
새언약되신 예수 안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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